책장에 묵혀두었던 《팀 켈러의 일과 영성》을 다시 꺼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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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목사님 설교를 듣다가 오래전에 받아두었던 책 한 권이 생각났다. 팀 켈러의 《일과 영성》 이다. 우리 목사님은 가끔 설교 중에 책을 소개해 주신다. 나도 그런 책들은 관심 있게 찾아보는 편인데, 이번에 소개된 책은 뜻밖에도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이었다. 책장에서 다시 꺼내보니 기억이 났다. 예전에 CBMC 활동을 할 당시 선물로 받았던 책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다 읽지는 못했다. 책도 제법 두꺼웠고 처음 몇 장을 읽다가 당시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해 그대로 책장에 꽂아두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묵혀 있던 책을 이제야 다시 펼쳤다. 일은 단순히 밥벌이가 아니라 소명이다 책의 첫 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일은 단순히 ‘밥벌이’가 아니라 소명이라는 것이다. 예전에도 CBMC 활동을 하면서 ‘일터사역’, ‘일터선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당시 나는 실제로 내가 운영하던 사업장이 하나의 일터선교 현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에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단골손님도 많았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이었다. 직원들과도 자연스럽게 신앙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아르바이트 학생들과도 비교적 오래 함께했다. 짧게 일하고 그만두기보다는 졸업 직전까지 몇 년씩 함께한 학생들도 있었다. 나는 젊을 때 여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방학이면 학생들에게 해외여행도 다녀오라고 권했다. 학생 한 명이 빠지면 내가 조금 더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했지만, 여행 간다고 하면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도 내가 일터에서 사람을 대하는 한 가지 방식이었던 것 같다. 매주 수요일 아침 7시, 카페에서 열린 CBMC 조찬모임 당시 CBMC 조찬모임도 내가 운영하던 카페에서 열렸다. 매주 수요일 아침 7시. 그 모임을 1년 넘게 카페에서 가졌다. 한번은 다음 날 아침 모임이 있는데 밤새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그때 집은 서울이어서 아침 일찍 눈길을 뚫고 카페까지 제시간에 ...

추억의 무교동 유정낙지 다시 찾은 날|아쉬움 뒤에 만난 서촌 베이커리카페 "레스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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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와 저녁을 먹다가 우연히 낙지 이야기가 나왔다. 낙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아주 오래전 자주 갔던 무교동 유정낙지 가 생각났다. “야, 거기 아직 있나? 다음에 한번 가보자.” 그렇게 이야기만 해두었다가 어제 친구와 정말 찾아갔다. 중국 출장에서 돌아오면 생각났던 유정낙지 내게 유정낙지는 단순히 낙지볶음을 먹으러 가던 식당은 아니다. 예전에 중국 출장을 자주 다닐 때가 있었다. 지금은 중국 음식도 많이 다양해졌지만 당시에는 출장만 가면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아 고생하곤 했다. 며칠씩 그렇게 지내다 한국에 돌아오면 생각나는 것이 얼큰한 우리 음식이었다. 공항에 도착해 서울로 들어와 유정낙지에서 매콤한 낙지볶음과 뜨끈하고 시원한 조개탕 을 먹으면 정말 정신이 번쩍 들곤 했다. “아, 이제 한국에 왔구나.” 그때는 그런 기분까지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유정낙지’라는 이름을 들으면 음식 맛보다 먼저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예전 자리는 아니었다 이번에 찾아보니 예전 내가 다니던 자리는 아니었다. 덕수궁 가까운 쪽으로 자리를 옮겨 영업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와 찾아가 자리에 앉으니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옛날 생각부터 났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낙지볶음, 조개탕 그리고 낙지 파전. 먼저 조개탕이 나왔다. 큼직한 조개가 들어간 맑은 국물이다. 예전에 중국 출장에서 돌아와 이 국물을 먹으면 속이 확 풀리면서 정신이 바짝 났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 오늘은 정신이 바짝 안 나네.” ㅎㅎ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조개탕도 시원했고 낙지볶음도 무난하게 먹을 만했다. 낙지를 통째로 올려 구운 파전도 보기 좋고 푸짐했다. 다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 시절 유정낙지의 강렬한 맛 까지는 아니었다. 추억의 맛집은 맛보다 기억이 더 강할 때가 있다 생각해 보면 음식 맛이라는 것도 참 묘하다. 20~30년 전 먹었던 음식과 지금의 음식을...

호세아 10장 쉽게 이해하기|‘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무슨 뜻일까?

호세아 10장을 읽다 보면 마음에 오래 남는 말씀이 있다.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 호세아 10장 12절 ‘묵은 땅을 기경하라.’ 요즘은 농사를 직접 짓지 않으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표현이다. 묵은 땅은 오랫동안 갈지 않아 딱딱하게 굳어진 땅을 말한다. 그런 땅에는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려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 그래서 먼저 땅을 갈아엎고, 돌을 골라내고, 흙을 부드럽게 만든 뒤에 씨앗을 심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마음이 바로 그런 굳어진 땅과 같아졌다고 말씀하시는 것 이다. 이스라엘의 마음은 왜 굳어졌을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았다. 먹을 것도 있었고, 풍요도 누렸고, 나라가 잘될 때도 있었다. 그런데 풍요로워질수록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 자신들의 힘을 더 의지했다. 호세아 10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열매를 많이 맺을수록 제단을 더 많이 만들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 받은 복이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이유가 된 것이다. 우리도 비슷할 수 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만 일이 잘 풀리면 기도가 줄어들고, 처음에는 감사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조금씩 굳어진다. 묵은 땅은 우리 마음에도 있다 말씀을 읽으며 내 마음의 묵은 땅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오랫동안 내려놓지 못한 고집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 대한 서운함과 미움일 수도 있고, 늘 반복하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습관일 수도 있다. 또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건 절대 바뀌지 않아.” 라고 단정해버린 생각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작은 생각 하나였는데 오랫동안 그대로 두면 마음이 굳어질 수 있다. 그런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도 깊이 뿌리를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씨앗부터 뿌리라고 하지 않으시고 먼저 말씀하신다. “묵은 땅을 기경하라.” 기경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기경한다는 ...

호세아 8장 쉽게 이해하기|‘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는 무슨 뜻일까?

호세아 8장을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말씀이 있다.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 호세아 8장 7절 짧은 말씀이지만 표현이 상당히 강하다. 바람을 심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광풍을 거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처음에는 조금 어렵게 느껴지지만 호세아 8장 전체를 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하나님을 안다고 말했던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호세아 8장에서도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해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신다. 왜 그랬을까? 입으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했지만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왕을 세우고, 우상을 만들고, 어려움이 생기면 하나님보다 강대국을 의지했다. 말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삶의 방향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바람을 심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농사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좋은 씨앗을 심으면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바람은 아무리 심어도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자신들의 힘과 방법을 의지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결국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을 심고 있었던 것 이다. 잘못된 선택과 욕심, 교만과 우상숭배가 바로 그들이 심은 ‘바람’이었다. 그런데 왜 광풍을 거두게 될까? 말씀은 단순히 ‘바람을 심었으니 바람을 거둔다’ 고 하지 않는다. 바람을 심었는데 광풍을 거둔다 고 말씀한다. 작게 시작한 잘못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기도 하고, 조금씩 타협했던 일이 어느 순간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선택이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이스라엘도 처음부터 하나님을 완전히...

호세아 6장 쉽게 이해하기|하나님은 왜 제사보다 인애를 원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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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6장을 읽다 보면 아주 익숙한 말씀이 나온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 호세아 6장 6절 처음 이 말씀을 보면 조금 의아하다. 하나님께서 직접 제사와 예배를 명하셨는데 왜 이제 와서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호세아 6장의 상황을 살펴보면 그 뜻이 조금 더 분명해진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돌아온다고 말했다 호세아 6장은 이런 말씀으로 시작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얼핏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드디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아침에 잠시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지는 구름과 이슬처럼 이스라엘의 사랑과 회개도 오래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려움이 생기면 하나님을 찾지만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입으로는 하나님께 돌아가겠다고 말했지만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나님은 제사 자체를 싫어하신 것이 아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한다”는 말씀은 제사나 예배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마음이 빠진 제사 였다. 제사를 드리면서도 사람을 속이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우상을 섬기면서 제사만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형식적인 신앙을 원하지 않으셨다. 아무리 많은 제사를 드려도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신앙이 아니었다. ‘인애’는 무슨 뜻일까? 호세아 6장 6절에서 중요한 단어가 인애 다. 인애는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는 뜻보다 더 깊다. 사랑, 자비, 신실함,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의미가 함께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셨던 사랑처럼 사람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신실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원...

호세아 4장 쉽게 이해하기|‘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에서 지식은 무엇일까?

호세아서를 읽다 보면 유난히 마음에 걸리는 말씀이 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 호세아 4장 6절 처음 이 말씀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한다는 뜻인가?’ ‘하나님에 대한 공부가 부족해서 망한다는 뜻인가?’ 그런데 호세아 4장을 천천히 읽어보면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단순히 머리로 많이 아는 지식과는 조금 다르다. 호세아 4장에서 하나님이 문제 삼으신 것 호세아 4장은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결과로 거짓말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몰랐던 사람들이 아니다. 제사도 있었고 제사장도 있었으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고 있었다는 것 이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는 뜻으로만 볼 수 없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분을 믿고, 그 말씀을 삶 속에서 따르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 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이름과 나이, 직업을 모두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정말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성경을 많이 읽고 말씀을 많이 들어도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한다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고 하셨을까?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

호세아 3장 쉽게 이해하기|왜 하나님은 떠난 고멜을 다시 데려오라고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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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다 보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장면을 만날 때가 있다. 호세아서도 처음 읽었을 때 그랬다. 특히 호세아와 고멜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부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호세아 3장은 길지 않다. 하지만 짧은 말씀 속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가 아주 강하게 담겨 있다. 떠나간 고멜을 다시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남편을 떠나 다른 사람을 따라갔다.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관계를 끝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뜻밖의 말씀을 하신다.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 고멜의 모습이 바로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께서 주신 풍요를 누리면서 오히려 그것이 다른 신이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 호세아가 고멜을 다시 찾아가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셨다. “너희가 나를 떠났어도 나는 아직 너희를 포기하지 않았다.” 값을 지불하고 다시 데려온 호세아 호세아는 말로만 고멜을 용서한 것이 아니다.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주고 고멜을 다시 데려온다. 자신을 떠난 사람을 찾아가고, 다시 값을 지불하고 데려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생각하는 사랑보다 훨씬 크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보통 상대방이 잘하면 사랑하고, 나에게 잘해주면 마음을 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사랑은 다르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는데도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신다. 잘못을 인정하고 완벽한 사람이 된 뒤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돌아올 길을 먼저 열어 놓으시는 사랑이다. 호세아 이야기가 지금 나에게 주는 의미 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