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무교동 유정낙지 다시 찾은 날|아쉬움 뒤에 만난 서촌 베이커리카페 "레스피레"


얼마 전 친구와 저녁을 먹다가 우연히 낙지 이야기가 나왔다.

낙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아주 오래전 자주 갔던 무교동 유정낙지가 생각났다.

“야, 거기 아직 있나? 다음에 한번 가보자.”

그렇게 이야기만 해두었다가 어제 친구와 정말 찾아갔다.

중국 출장에서 돌아오면 생각났던 유정낙지

내게 유정낙지는 단순히 낙지볶음을 먹으러 가던 식당은 아니다.

예전에 중국 출장을 자주 다닐 때가 있었다.

지금은 중국 음식도 많이 다양해졌지만 당시에는 출장만 가면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아 고생하곤 했다.

며칠씩 그렇게 지내다 한국에 돌아오면 생각나는 것이 얼큰한 우리 음식이었다.

공항에 도착해 서울로 들어와 유정낙지에서 매콤한 낙지볶음과 뜨끈하고 시원한 조개탕을 먹으면 정말 정신이 번쩍 들곤 했다.

“아, 이제 한국에 왔구나.”

그때는 그런 기분까지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유정낙지’라는 이름을 들으면 음식 맛보다 먼저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예전 자리는 아니었다



이번에 찾아보니 예전 내가 다니던 자리는 아니었다.

덕수궁 가까운 쪽으로 자리를 옮겨 영업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와 찾아가 자리에 앉으니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옛날 생각부터 났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낙지볶음, 조개탕 그리고 낙지 파전.

먼저 조개탕이 나왔다.

큼직한 조개가 들어간 맑은 국물이다.

예전에 중국 출장에서 돌아와 이 국물을 먹으면 속이 확 풀리면서 정신이 바짝 났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 오늘은 정신이 바짝 안 나네.” ㅎㅎ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조개탕도 시원했고 낙지볶음도 무난하게 먹을 만했다.

낙지를 통째로 올려 구운 파전도 보기 좋고 푸짐했다.

다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 시절 유정낙지의 강렬한 맛까지는 아니었다.

추억의 맛집은 맛보다 기억이 더 강할 때가 있다

생각해 보면 음식 맛이라는 것도 참 묘하다.

20~30년 전 먹었던 음식과 지금의 음식을 정확히 비교할 수 있을까?

식당의 맛이 변했을 수도 있고 내 입맛이 변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때는 해외출장을 마치고 며칠 만에 먹는 한국 음식이었다.

그러니 조개탕 한 숟가락, 매운 낙지 한 젓가락이 지금보다 몇 배 맛있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오래전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맛은 조금 아쉬웠지만 추억 하나를 다시 꺼내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점심이었다.

점심 후 서촌으로


점심을 먹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근처에서 차 한잔하고 가자며 베이커리 카페를 검색했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 무작정 들어가기보다 사진도 보고 후기들도 몇 군데 비교해 보고 가는 편인데, 그렇게 눈에 들어온 곳이 서촌 레스피레 베이커리 카페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기는 찾아보고 오길 잘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엄청 크고 화려한 대형 카페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크지 않은 공간을 구석구석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다.

작은 테이블과 소품, 빵이 놓인 진열대까지 공간을 참 알차게 사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1층을 둘러보고 2층으로 올라갔는데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작은 공간도 이렇게 예쁘게 꾸밀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소금빵

레스피레를 찾아보면서 소금빵 이야기가 많아 기본 소금빵과 크림이 들어간 소금빵을 골랐다.

기본 소금빵은 한 번 더 따뜻하게 데워 내주었는데 겉은 살짝 바삭하고 안은 부드러웠다.

나는 무엇을 많이 넣은 빵보다 이런 기본 빵이 맛있는 집이 좋다.

기본이 맛있으면 다른 빵도 어느 정도 믿음이 간다.

함께 간 사람은 크림이 들어간 소금빵이 더 좋다고 했는데 나는 역시 기본 소금빵 쪽.

취향 차이다. ㅎㅎ

처음 마셔본 솔트 썸머 라떼


이날 기억에 남은 또 하나는 솔트 썸머 라떼.

이름부터 궁금했다.

한 모금 마셔보니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 사이로 중간중간 짭조름한 소금 맛이 톡 올라온다.

단맛과 짠맛이 따로 놀지 않고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아이스크림이 들어가 있어 디저트 같은 느낌도 강했다.

커피 맛을 진하게 즐기는 사람이라면 조금 달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날처럼 식사 후 천천히 쉬면서 마시기에는 괜찮았다.

빵도 맛있고 음료도 좋았다.

무엇보다 북적이는 대형 카페가 아니라 작은 공간에서 잠시 쉬어가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아쉬운 추억의 맛집, 새로 발견한 맛집

이날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조금 재미있다.

오랜 추억을 찾아간 유정낙지는 예전만큼의 감동은 없어서 조금 아쉬웠고,

큰 기대 없이 검색해서 찾아간 서촌 레스피레는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다.

예전에 너무 좋았던 곳이 다시 가보니 평범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별 기대 없이 들어간 작은 곳에서 의외의 즐거움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유정낙지는 또 하나의 추억이다.

중국 출장에서 돌아와 얼큰한 낙지볶음과 조개탕을 먹으며
“이제 살 것 같다.” 했던 그때의 나는 아직도 기억난다.

맛은 세월 따라 조금 달라질 수 있어도 그 음식과 함께했던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리고 그날의 조금 아쉬웠던 점심은 서촌의 작은 베이커리 카페 덕분에 기분 좋게 마무리됐다.

추억을 찾아 나섰다가 새로운 장소 하나를 기억에 담고 돌아온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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